안녕하십니까?
복지재단의 도움을 받고 있는 최은O 입니다.
저는 어려운 살림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어린시절도 외로움과 배고픔으로 보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아침 일찍나가 캄캄한 밤이면 들어오곤 했습니다.
제 나이 4~5살때, 낮이면 아무도 없는 사당동 무허가 판자집에서 공포에 떨며 엄마를 부르다가
배고픔에 지쳐 잠 들곤 했습니다.
방문짝도 없고, 전기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떨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한 4월에 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집에서 저는 집안살림을 도맡아 했습니다.
날마다 술에 취해 들어오시는 아버진, 엄마에게 하던 술주정을 어린동생과 저에게 하곤 했습니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실업계 고등학교에 갔으나,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고 아버지가 악쓰고 욕하는 소리와 생활고로 찌든 생활에 지쳐 멍하니 정신병자처럼 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억지로 졸업하고 공예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 취직했습니다.
거기서 근무하는 남자와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술주정 심한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주 후련했습니다.
부모 사랑을 흡족하게 못 받은 저는 남편 사랑에 무척 행복했습니다.
신혼살림이래야 작은 방 한칸에 밥솥, 냄비, 숟가락 뿐이었지만, 마음은 편안했습니다.
딸아이를 낳고, 어려운 살림에 보태려고 이것저것 부업을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결혼하고 보니 남편도 아버지와 똑같이 아니 더 술주정이 심했습니다.
남편도 술이 취하면, 밤새도록 뭐가져와라 저래라 하면서 나를 못살게 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나를 종부리듯 달달 볶았습니다.
남편이 퇴근해 올때쯤이면, " 오늘은 뭘 트집잡아 날 또 때릴까?" 하는 마음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딸아이가 여고를 졸업한 후 남편은 나에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이미 마음이 멀어지고 다른 여자도 있었기에 남편이 원하는데로 이혼을 했습니다.
이미 내 몸은 병 투성이었습니다. 날마다 쭈그리고 앉아 부업을 해서 그런지 어깨와 등이 무척 아팠습니다.
내 얼굴에 병색이 돌고, 더 이상 쓸모없어 보이니까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저를 버렸습니다.
젊은 나이인데도 노인처럼 퇴행성 관절염이 심했고, 어려서부터 항상 불안하고 무서움에 떨며 살아서 그런지 심장도 많이 안 좋다고 했습니다.
또 신장도 안 좋아 몸이 무섭게 붓곤 했습니다.
이혼 후 어디 취직을 하려고 가면, 나를 보고 중병환자 취급하여 써 주질 않았습니다.
수급자가 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으나, 월세와 수도세, 전기세 내고 나면, 식생활비가 부족하지만, 부족한데로 지내고 있습니다.
복지재단에서 보내주신 돈은 식비에 쓰고, 약간의 병원비와 약값에 보탬이 됩니다. (보험 안되는 약)
재단에서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행복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고마움에 감사하고 기운이 났습니다.
김영래 이사장님, 복지재단 가족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도움에 보답코저 더 열심히 살고, 열심히 치료하여 건강한 생활인이 되도록 노력하며 살겠습니다.
도움주신 분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6년 12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최은O 올림